2016. 02. 10. Wednesday, Genesis 37:34

 

2016. 02. 10. Wednesday

Genesis 37:34
And Jacob tore his clothing and put sackcloth on his loins. And he mourned many days for his son. 


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베옷을 허리에 두르고 여러 날을 애통한 것은 요셉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곱이 생각한 것처럼 요셉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집트로 "한동안" 사라진 것 뿐이었다.

그리고 22년 뒤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요셉은 그 형들이 전혀 몰라볼 정도로 안팎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창 42:7)

Genesis 42:7
And Joseph saw his brothers and recognized them; but he remained a stranger to them and spoke harsh things to them, and said to them, From where have you come? And they said, From the land of Canaan to buy food. 

그런데 22년 동안 요셉의 형들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들의 겉모습은 흰머리도 나고 주름도 잡히고 변했겠지만 그들의 내면과 태도는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어떻게 요셉의 삶은 탈바꿈 하듯이 완전히 바뀌어 졌는데 형들의 삶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일까?

가까운 주변 사람에 의해 나의 옷이 강제로 벗겨지고 노예가 되어 가나안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이러한 변화가 올 수 없다.

내가 나의 체면을 잃고 목숨마저 잃는다고 해도 스스로 그 옷을 벗어 던지고 그 유혹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이전의 모습과 태도, 자리와 소유를 잘 유지하고 살게 될 것이다.


잃는다는 것은 이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잃게 됨으로써 얻는 것이 있다. 즉 평소에는 그 가치를 모르고 살지만 잃게 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는지 그 가치를 알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소중한 것을 잃은 뒤 야곱처럼 옷을 찢고 애통하며 보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잃은 것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 나선다.

은전 하나를 잃어버린 여인은 불을 켜고 집 안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양을 잃은 목자도 그 양을 찾기 위해 나머지 양들을 거기에 두고 찾아 나선다.

Luke 15:8
Or what woman having ten drachmas, if she loses one drachma does not light a lamp and sweep the house, and look carefully until she finds it? 

Luke 15:4
What man of you having a hundred sheep, and losing one of them, does not leave the ninety nine in the deserted place and go after the lost one until he finds it? 


하지만 둘째 아들이 자기 유산을 챙겨 스스로 아버지 집을 떠난 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들도 자기가 돌아가면 아버지가 받아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아버지 집으로 돌리게 된다.

Luke 15:20
And rising up, he came to his father. But he yet being far away, his father saw him and was moved with pity. And running, he fell on his neck and fervently kissed him. 


그런데 이렇게 잃어버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게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잃어버린 것을 찾게 되면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을 때에는 몰랐던 기쁨을 발견케 되고 내가 가진 것을 낭비하면서 잔치를 베풀게 된다.

그래서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오히려 잃게 되는 것이 축복이다. 왜냐하면 잃게 됨으로써 진짜 가치를 회복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을 잃어버린 야곱은 은전을 잃어버린 여인처럼 부지런히 찾지도 않았고 양을 잃어버린 목자처럼 열심으로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물론 그는 작은 아들을 기다리던 이버지처럼 문 밖에서 요셉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야곱은 염소피 묻은 요셉의 옷 때문에 요셉이 들짐승에게 먹혀서 이 땅에서 사라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만약 야곱이 그 염소피 묻은 요셉의 옷을 보지 않았다면 가나안 전역은 물론 외삼촌 집이 있는 하란과 이집트까지 찾아 다니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국 이집트에서 발견한 요셉을 비싼 값을 치러고 찾아서 데리고 왔다면 엄청난 기쁨이 있었을 것이지만, 형들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엄청난 슬픔과 비극이 그 집 안에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은 차라리 잃어버린 상태로, 사라지고 없어진 상태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요셉처럼 안팎이 변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풀어지는 통로로 준비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잃어버린 요셉을 찾겠다고 설치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러므로 너무나 소중했던 요셉이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고 나서지 말고 슬퍼하고 애통하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그래야 22년 뒤에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잃어바린 요셉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인간적인 아쉬움이나 애정 때문에 찾아 나서지 말자. 소식이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죽은 것은 무덤에 묻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파헤치면 썩은 냄새만 풍기게 될 것이다.

즉 찾아 나설 것은 찾아 나서야 하겠지만 보낼 것은 보내야 하고 잊을 것은 잊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 진다.

나는 보내고 잊어야 할 것을 붙들고 있지 않나? 차라리 몇일이든 몇 달이든 애통한 뒤 보내야 한다.

그 리고 붙들어야 할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잃고 나의 미래와 생명조차 잃는다고 해도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이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끝날 것이다.

John 15: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He that remains in Me, and I in him, this one bears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are not able to do an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