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08. Monday, Genesis 37:32

 2016. 02. 08. Monday

Genesis 37:32
And they sent the tunic reaching to the soles of his feet, and they took it to their father, and said, We have found this. Now look, is it your son's tunic?  


요셉의 형들은 그들이 그 옷을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옷이 그렇게 발견되도록 만든 사람이 그들이었다.

즉 요셉의 형들이 그 옷과 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을 분리시켰기 때문에 옷이 그렇게 요셉을 떠나서 따로 발견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실체를 잃게 만들고 옷(껍데기)은 발견케 만들었다. 실체가 없는 옷이라면 아무리 비싼 옷이라고 해도 그 실제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돈으로 따지자면 별로 가치가 없는 옷을 걸치고 있다고 해도 실체가 분명하고 건강하다면 그것이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암행어사가 겉으로는 거지처럼 다 헤진 옷을 입고 다녀도 속에는 임금님이 주신 마패가 있기 때문에 무슨 옷을 입고 어디서 자든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속에 이런 진짜 마패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어사처럼 꾸미고 잘 입고 잘 먹고 살아도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믿음 없이 산다는 것은 실체없이 껍데기만 갖고 사는 것과 같다. 껍데기는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껍데기일 뿐이다.

옷은 그 내면에 있는 실체에 따라 그 모양을 드러내고 실체가 없는 옷은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으며 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내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나의 삶은 이렇게 바닥에 떨어진 채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세상따라 상황따라 주변 사람들 따라 밀려다니거나 끌려다니며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믿음의 실체가 있는 삶은 결코 주변 상황이나 사람들 따라 살지 않고 부르신 길이 맞고 방향이 맞다면 비바람을 맞서고 목숨을 걸고라도 헤쳐 나아간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았다.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이방인들에게 넘겨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감옥에서 풀려날 기회가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기꺼이 죄수가 되어 로마로 가기로 결정한다.  

도중에 14일 동안 폭풍우 속에서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에 죄수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실체는 하나님처럼 되어 로마로 입성하게 되고 로마에서 군인들의 보호 속에 감옥이 아니라 셋집에서 만 2년동안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 (행 28:6, 30-31)

Acts 28:6
But they expected him to be about to become inflamed, or suddenly to fall down dead. But over much time , they expecting and seeing nothing amiss happening to him, changing their minds, they said him to be a god.  

Acts 28:30-31
30 And Paul remained two whole years in his own rented place, and he welcomed all those coming in to him, 31 proclaiming the kingdom of God, and teaching the things concerning the Lord Jesus Christ with all freedom and without hindrance.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뢰가 없는 삶과 신뢰할 수 없는 것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삶이란 실체가 없는 옷과 같다. 존재는 있지만 늘 불안하고 흔들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요셉은 화려한 옷을 입고 살았지만 형들과의 관계는 깨어져 있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그들에게는 신뢰가 없었고 실체가 없이 껍데기로 겉도는 삶을 살았다는 것과 같다.

그럴듯하게 말도 하고 악수도 하고 함께 앉아 먹기도 하며 심지어 한 집에 살기도 하지만 실체없이, 신뢰없이, 믿음없이 살아갈 수 있다.

심지어 예배당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사역도 하고 기도와 금식도 하지만 믿음없이 실체가 빠져버린 껍데기로 종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우리 동생(our brother)"의 옷이 맞는지를 확인해 보라고 하는대신 "당신의 아들(your son)"의 옷이 맞는지를 확인해 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과 요셉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신뢰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요셉의 실체가 빠진 요셉의 옷만 갖고 나타났고 그들과 아버지 사이에 겉도는 관계인 또 다른 불신을 심는다.

나는 실체대신 "당신 아들의 옷"만 갖고 나타나지는 않는가? 군인들이 제비뽑아 나눠가진 예수님의 옷(신학 이론)을 갖고 와서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만 확인시켜 주고 확인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믿음없이 사는 나의 삶은 예수님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만을 드러내며 소망이 아니라 절망만 가져다 줄 것이다.

믿음과 신뢰란 하루 아침에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터 놓고 낮은 자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신뢰가 생기고 믿음이 자라간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하자고 유혹할 때 요셉은 그 옷을 팽개치고 도망한다. 왜냐하면 요셉에게 있어서 보디발과의 신뢰관계가 실제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실체였기 때문이다. (창 39:9)
 
Genesis 39:9
No one in this house is greater than I, and he has not withheld anything from me except you, because you are his wife. And how should I do this great evil and sin against God?  

그 당시 노예들은 신발도 없고 스모 씨름꾼의 샅바 같은 것만 입고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이 그 잡혔던 옷을 두고 도망했다는 것은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했다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의 실체 때문에 껍데기인 옷을 벗어 제치고 도망한다. 즉 그는 수치 뿐 아니라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과감히 그 유혹의 옷을 벗어 던지고 믿음의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물론 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지만 하나님이 오셔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의 실체를 다시 확증해 주신다. (그 당시 이러한 강간죄는 사형감이었지만 보디발이 요셉을 살려서 감옥에 가둔 것은 요셉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들이 갖고 온 요셉의 찢어지고 염소 피 묻은 옷은 깨어진 야곱 가족들의 불신과 거짓의 실체를 드러내어 주었고 보디발의 아내 앞에서 도망치는 요셉의 벗은 몸은 하나님과 보디발에 대한 믿음의 실체를 드러내어 주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입혀 주고 만들었던 잘못된 정체성의 상징인 요셉의 옷을 강제적으로 벗기고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그를 노예로 팔았다.

하지만 보디발의 집에서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고 강제적으로 동침을 요구하는 그녀로부터 자신의 참된 정체성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그는 잡힌 옷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입혀준 옷을 입고, 또한 그 옷을 뺏앗기지 않기 위해 타협하며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하고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화려한 옷을 사고 팔며 꾸미는데 시간과 돈과 삶을 드리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비록 아무런 이름과 직책과 겉으로 보이는 것 없이 벌거벗은 것 같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다고 해도 그 감옥 속에서 믿음의 실체를 드러내며 살아갈 것인가? (창 39:21)

Genesis 39:21
And Jehovah was with Joseph, and extended kindness to him. And He gave him favor in the eyes of the warden of the prison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