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07. Sunday, Genesis 37:31

 

2016. 02. 07. Sunday

Genesis 37:31
And they took Joseph's tunic, and killed a ram of the goats, and dipped the tunic in the blood.  


요셉의 형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가나안에서 사라졌다고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며 종교 지도자들과 사탄이 생각했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영원히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나안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발견될 수 있었고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처음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라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라짐을 통해서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다른 것을 갖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셉이 가나안 땅에서 사라지면서 이집트 땅에 나타났고 그의 아버지가 주었던 특별한 겉옷이 사라지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준비하신 이집트 총리의 옷을 입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갖고 다니던 휴대폰이 잠깐 동안 사라지고 안보이면 불안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그 사라짐을 통해서 나는 내가 얼마나 그 휴대폰에 매여 살았고 중독되어 있었는지를 발견케 된다. 즉 사라짐을 통해서 다른 것을 발견케 된다.  

술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중에는 모르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손과 온 몸이 떨리는 금단현상(withdrawal)이 나타난다.

김치가 없는 외국에 나와서 살다보면 김치가 얼마나 맛있고 감사한지 알 수 있고 부모나 가족, 친구와 떨어지고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그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즉 사라져야 나타난다. 그러므로 참된 것이 나타나게 하려면 먼저 참되지 않은 것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사라져야 할 것을 붙들고 있으면 나타나야 할 것이 드러날 수 없다.

부자 청년 관원은 사라지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의 전부처럼 생각해 왔기에 그것을 사라지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영생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자기 스스로 찾아서 나아왔던 모든 것 되신 예수님을 그 인생에서 사라지게 해 버린다.

에녹은 65세 때 므두셀라를 낳았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 때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남기지 못했던 하나님과 이 땅에서 300년 동안 동행한 기록을 남겼고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동행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갔다. (창 5:24)

Genesis 5:24
And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t; for God took him.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기쁨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이 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열매를 따먹고 난 뒤 그들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멈추게 되었고 수치심으로 인해 무화과 잎으로 자신들을 가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나무 사이에 숨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에덴 동산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하늘을 떠나서 이 땅에 오셨고 마리아의 태 안으로 오셨으며 감람산의 피땀 흘리는 시간을 지나 갈보리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중단하시지 않으셨다.

그랬기 때문에 그 마지막 순간 아버지의 임재가 사라졌을 때 그는 이렇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사와 이 땅에서의 마지막 하루 동안을 길갈에서 여리고, 그리고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다니던 엘리사가 홀연히 사라지고 난 뒤 그는 겉옷과 갑절의 기름 부으심을 엘리사에게 남긴다. (왕하 2:13)

2 Kings 2:13
And he lifted up the mantle of Elijah that had fallen from him, and turned back and stood on the lip of the Jordan.  


떠나고 사라져야 나타나고 드러난다.

형들은 자신들의 거짓을 드러나게 하려고 많은 염소 가운데서 수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죽여 없애면서 그 피를 흘려 요셉의 옷에 적셨고 그들의 미움과 질투가 그 거짓과 함께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용서와 사랑과 진리를 드러나게 하려고 에덴 동산에서 양 한 마리를 죽여 가죽을 벗겼고 갈보리 언덕에서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을 피흘리며 죽게 했다.

요셉의 형제들은 수 많은 염소들 중에서 한 마리를 없애는 값싼 희생으로 자신들의 미움과 질투와 거짓을 드러냈고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독생자를 내어주는 엄청난 값을 치룸으로써 용서와 사랑과 진리를 드러 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심으로 성령님이 이 땅에 드러나게 하셨다. (요 16:7)

John 16:7
But I tell you the truth, it is advantageous for you that I should go; for if I do not go away, the Comforter will not come to you. But if I go, I will send Him to you.  
 

황소와 염소의 피는 결코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없고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없앨 뿐만 아니라 다시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히 10:3-4, 시 103:12)

Hebrews 10:3-4
3 But in these there is a remembrance of sins year by year, 4 for it is not possible for the blood of bulls and goats to take away sins.

Psalms 103:12
As far as the east is from the west, so far has He removed our transgressions from us.  

그렇기 때문에 염소의 피를 흘린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이 이미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눌린 채 죄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무엇을 드러나게 할 것인가? 반대로 무엇을 움켜쥠으로써 무엇을 사라지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나를 드러나게 하려고 하나님을 사라지게 한다. 아니면 하나님을 드러내려고 나를 기꺼이 사라지게 한다.

세례 요한이 그랬다. 그는 예수님을 드러내려고 자신을 낮추고 사라지게 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가 메시아가 아닌지를 물었을 때 그는 분명히 아니라고 했고 그는 메시아의 신발끈도 풀 자격이 없다고 했다. (요 1:27, 3:30)

John 1:27
This One it is who has come after me, who has been before me, of whom I am not worthy that I should loose the thong of His sandal.  

John 3:30
That On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었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그가 믿음의 조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나는 나를 드러내려고 움켜 쥐고 있는 것이 없는가? 나는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무엇을 사라지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