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08. Friday, Genesis 37:6

 

2016. 01. 08. Friday

Genesis 37:6
So he said to them, "Please hear this dream which I have dreamed:

꿈이 없으면 백성이 제멋대로 마구 (방자히) 행하고 멸망으로 치닫지만, 꿈이 있어도 그 꿈 때문에 망할 수 있다. (잠 29:18)

Proverbs 29:18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are unrestrained. But blessed is he, the keeper of the law.     

요셉은 자기가 꾼 꿈 때문에 형들에게 죽음을 당할 뻔 했다. 하지만 바로 왕이 꾼 꿈 때문에 요셉은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고 이집트의 총리가 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 때문에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과 술사들이 죽게 되었으나 다니엘은 그 왕의 꿈 때문에 승진을 하게 된다. (단 2:5)

Daniel 2:5
The king answered and said to the Chaldeans, "My decision is firm: if you do not make known the dream to me, and its interpretation, you shall be cut in pieces, and your houses shall be made an ash heap.

결국 요셉은 "자기가 꾼 꿈"을 형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 뻔 했고 노예로 팔려 갔으나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에 대해서 왕에게 말했고 풀이까지 해 주었기 때문에 모든 박사와 술사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다니엘은 승진한다.

요셉은 "바로 왕이 꾼 꿈"에 대해서는 그것을 풀이하고 그 적용까지 말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감옥에서 풀려났을 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이 비천하게 취급하는 히브리인이며 노예였고 죄수라는 신분이었지만 그 모든 선입견과 벽을 뛰어 넘고 그 당시 최강국이었던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된다.

꿈은 풀이(imterpretatipn)가 없으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 그리고 풀이가 있어도 그것이 실제로 적용(apply)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백일몽) 꿈에 불과한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로부터 자기가 꿈에서 본 신상이 앞으로 세상에 일어날 왕국들에 대한 예언적인 그림이라는 풀이(interpretation)를 들었으나 오히려 금신상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절하도록 했다.

이처럼 꿈이 있어도 그 풀이가 없거나 풀이가 잘못되면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올바른 풀이가 있어도 적용(application)이 없거나 그 적용이 잘못되면 느부갓네살의 금신상과 같은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나님은 2008년 말에 "리즈 하월즈의 영적 유업을 회복하라!(Redeem the spiritual inheritance of Rees Howells!)"는 마음(꿈, 비전, 부르심)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단지 내 마음에 매주 일요일마다 "그 성경학교 부지에 가서 서라!"는 마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2011년 3월에 어떤 분이 기도 중에 본 그림을 통해서 그동안 조금씩 깨닫게 해 주신 비전(vision)을 글로 옮기라는 마음을 주셨고 그것을 마구 뿌리지 말고 한 사람씩 연결된 사람들에게 나누라는 마음을 주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갈망이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며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도 안되는 영어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글로 옮겼고 한 사람씩 연결되는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기 시작했다.

뭔가 금방 결과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2013년 12월 말, 한 싱가포르 교회가 그 성경학교 부지를 매입했고 작년 5월에 그 땅과 건물을 다시 하나님께 봉헌(rededication)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 웨일즈 성경학교와 공식적인 관계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그 비전(vision, dream, revelation, calling)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가볍게 다루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수 있었기에 참으로 감사하다.

지금은 웨일즈에서 더포지(the Forge) 대장간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통해 계속 믿음의 발걸음을 연습하고 있다.

때로는 실수하고 실패하며 잘 들리지도 않고 잘 보이지도(vision, revelation) 않으며 어떻게 풀이(interpretation)해야 하고 어떻게 적용(application)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오늘도 연습하고 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고 있는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형들에게 자기 꿈을 들어보라고 했고 세겜에서 짐승을 치고 있던 형들에게 안부를 물으러 갈 수도 있었다.

만약 요셉이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고 지혜가 있었다면 자기 꿈을 형들에게 나누지 않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마음 속에 품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게 되면 요셉처럼 말을 하고 싶어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두 번 듣고 한 번 말하라고 우리의 입은 하나 만들고 귀는 두 개를 만드신 것이 아닐까? (약 1:19)

James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So then, my beloved brethren, let every man be swift to hear, slow to speak, slow to wrath;


요셉이 꾼 꿈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듣지 않고 행하거나 나의 열심이 하나님을 앞서 가면 하나님이 주신 것 때문에 나를 망칠 수 있다.

에덴 동산 중앙에 있던 두 나무는 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축복이었다. 즉 생명 나무는 먹고 영생하라는 것이었고 지식의 나무는 먹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며 하나님과 그 말씀을 기억하고 인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창 2:16-17)

Genesis 2:16-17
16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you may freely eat; 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you shall not eat, for in the day that you eat of it you shall surely die."

그런데 하나님께 듣지 않고 사탄에게 듣고 반응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것 때문에 인간은 멸망으로 치닫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나무 십자가는 무서운 사형틀이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께 듣고 스스로 거기에 못박히심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의 십자가는 에덴에서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기에 달린 어린 양을 바라보기만 하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고 그것을 쳐다 본 사람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병의 위중을 떠나서 다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민 21:8)

Numbers 21:8
Then the LORD said to Moses, "Make a fiery serpent, and set it on a pole; and it shall be that everyone who is bitten, when he looks at it, shall live."

그것은 그들의 상태나 조건, 그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약속)" 때문에 살아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물었던 그 불뱀은 형상조차 보기 싫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 사람들은 그 놋뱀을 쳐다 보았고 살아났다.

처음 아담과 비슷한 모습을 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이 찢어지고 피로 온 몸이 범벅이 된 채 쳐다보기조차 무서눌 정도로 끔찍했지만, 그 십자가에 달린 그를 믿음으로 바라본 자들은 생명을 얻게 된다. (요 3:14-15)

John 3:14-15
14 "An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15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나는 듣기를 속히 할 것인가? 아니면 말하기를 속히 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의 말을 속히 들을 것인가?

결국 나의 삶과 죽음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듣는 말"에 따라서 결정된다.

사람들은 불뱀이 물려고 다니는 상황 속에서 모세가 하는 말이 들렸을까? 그리고 죽어가는 그 처참한 상태에서 모세가 하는 말을 듣고 싶었을까?

그래서 침묵 속에서 듣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소음이 요란해도 내면에 침묵을 만들수  있고 그 침묵 속에서 들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심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