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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웨일즈 성경학교(리즈하월즈의 유업)와 그 땅을 고집하는가?

어떤 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만약 리즈 하월즈의 유업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굳이 웨일즈 성경학교 땅을 고집합니까? 다른 지역에서 그의 유업을 회복하고 그 비전을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까?” 저희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리즈 하월즈와 그와 함께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땅에서 중보와 믿음의 사역을 위해서 자신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생명을 쏟아 부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믿음의 유업이나 그 땅이 그렇게 중요한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하나님은 저에게 ‘매 일요일 웨일즈 성경학교로 가서 그 땅에 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웨일즈 성경학교와 관련한 믿음과 순종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영적 유업의 차원에서 그 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땅은 하나님이 주신 유업이다: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 (창세기 22)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은 그저 평범한 산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분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이 산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3일 길이나 떨어진 브엘세바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으로 가서 그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모리아 산은 구별된 (거룩한) 산이 되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초를 그 땅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여부스 족이 예루살렘에 거하게 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까지 아무도 여부스 족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합니다. 여호수아도, 사사시대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도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15:63, 사사기 1:8, 21). 사울 왕도 그들을 쫓아내는데 실패했습니다 (사무엘하 5:6-7). 심지어 다윗 왕이 가나안 대부분 지역을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부스 거민은 자신만만하고 확고하게 그 땅에 살았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윗 성을 거기에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아를 손에 넣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다윗 왕국이 안정되었을 때조차 모리아는 여전히 여부스 사람인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오르난은 히브리어로 ‘강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음)

원수는 아주 간교합니다. 원수는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던 (마지막 순간에 수풀에 걸린 양을 이삭 대신에 바침) 그 땅을 차지하고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에 성전이 세워질 그 땅에 믿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여부스 족은 그 땅을 짓밟아 타작마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쌓았던 제단을 여부스 족이 짓밟음으로 말미암아 다윗을 포함한 많은 후대의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모리아 땅의 역사는 잊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여부스 족은 히브리어로는 ‘예부스(יבוּס)’ 인데 그 뿌리는 ‘부스(בּוּס)’ 라는 말로 ‘짓밟다’는 뜻입니다.) 원수는 아브라함이 쌓았던 믿음과 순종의 기초가 있는 모리아를 오랜 세월동안 차지하고 묻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원수의 전략과 힘을 성전의 탄탄한 기초를 닦는데 역이용 하셨습니다.

 

다윗의 실수를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사무엘하 24, 역대상 21)

다윗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군사들의 숫자를 세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켜서 한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여기에 개입되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사무엘하 24:1-7, 역대상 21:18-19). 이러한 다윗의 실수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믿음과 순종의 기초를 놓은 뒤 1000년 동안 감취었던 그 땅이 드러나게 됩니다. 온역이 진행되는 중에 천사가 다윗에게 나타나 ‘여부스 족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씀대로 올라가서 그 타작마당을 구입합니다. 이 타작마당이 바로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던 그 모리아 산이고 이 땅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역대하 3:1). 하나님은 다윗의 실수를 역으로 사용해서 원수에 의해서 묻혀 있던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드러내시고 성취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알란 스코트랜드의 팀도 다윗이 ‘군사의 숫자를 세라’는 격동을 받았던 것처럼 ‘웨일즈 성경학교를 떠나고 그 땅을 팔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무엘하 24:1). 만약 그랬다면 이것은 리즈 하월즈가 쌓았던 그 믿음의 기초를 다시 드러내시고 영원한 그 분의 목적을 성취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봅니다. 이 땅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처럼 지난 몇년 동안 묻혀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되돌려져야 하고 리즈 하월즈에게 주어진 그 비전이 회복되며 믿음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보와 선교의 사역이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기념비(monument)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운동(movement)! (신명기34)

모세는 120세에 죽었지만 그가 죽기 전에 그의 시력이나 기력은 조금도 쇠하지 않았습니다(34:7).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케 되었고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졌습니다(34:9). 하나님은 모세가 죽고 난 뒤 그를 모압 땅에 묻었는데, 아무도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34:6).

만약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시지 않았다면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갔을 것이고 모세의 그늘 아래서 여호수아는 그의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만약 백성들이 모세가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았다면 그들은 웅장한 모세의 기념비를 세웠을 것이고 전쟁이 기다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보다 요단 동편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세가 죽었고 아무도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모세의 안수를 통해 지혜의 영을 받은 여호수아가 비로소 약속의 땅을 향한 움직임(movement)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리즈 하월즈가 놓은 사랑, 믿음, 중보, 그리고 선교의 기초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전진하는 것을 인해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리즈 하월즈의 기념비를 만들기 보다는 리즈 하월즈가 세운 믿음의 기초 위에서 지금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통해 강력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유업 회복, 부지 반환, 사역 재개)

저는 글로벌 호라이전스 이사들이 주택개발업자에게 땅을 팔기로 한 것과 다른 관점에서 그 땅을 구입할 어떤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마음이 듭니다. 마치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론이 그의 지팡이에 이름을 쓰고 하나님 앞에 두었을 때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혔던 것처럼 이 제안서를 하나님 앞에 갖고 나가야 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택한 사람의 지팡이라면 거기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 (민수기 16-17)

고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과 죽음 이후에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항해서 모였습니다. 이 때문에 온역이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 시작이 되었지만 아론이 향로를 갖고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섰을 때에 온역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별로 12개의 지팡이를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중보했던 아론의 지팡이였습니다. 이 아론의 지팡이에서 하루 밤 사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열려서 익었습니다.

 

하나님께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적인 과정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서 익을 때까지는 몇 달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아론의 지팡이는 하루밤 사이에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시간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웨일즈 성경학교 건에 개입하신다면 모든 것은 하루 밤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정체성이 드러나다: 아론이 자기 지팡이가 어떤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알았을까요? 어쩌면 그는 알았을 수도 있고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열매를 맺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나무인지 알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의 웨일즈 성경학교는 그 정체성을 상실했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웨일즈 성경학교의 믿음에 근거한 중보와 선교의 정체성은 주님에 의해 반드시 드러나고 회복될 것입니다.

 

소유상실과 권위회복: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두라고 하셨기 때문에 아론은 그의 지팡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론은 지팡이를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권위를 입증해 주셨습니다. 아론은 지팡이를 잃었지만 하나님의 권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일에 헌신하고자 한다면,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뭔가 잃을 것을 미리 결정해야 합니다.

 

죽은 지팡이가 다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무 가지는 잘리면서 이미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만약 나무 가지가 몇일 전에 잘렸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에서 잘리고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더 이상 살 가능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공급하는 수관은 나무 중심에 있지만 영양분을 공급하는 체관이 나무 껍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론은 이 지팡이를 약 40년 이상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팡이는 살아날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루 밤 사이에 살리셨을 뿐 아니라 살구열매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정체성 회복과 사역 재개: 히브리어를 보면 아론의 지팡이에 맺힌 살구열매는 그냥 열매가 아니라 잘 익은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에서 살구나무는 ‘파수한다(watching)’는 말과 어원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희어져 추수하게 된 때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완전히 마치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한복음 4:34-35)

 

저는 주님께서 웨일즈 성경학교 건을 주목하시며 그 참된 정체성이 회복되고 사랑과 믿음에 바탕을 둔 열방을 향한 중보와 선교 사역이 다시 시작되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는 것을 지켜 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예레미야 1:11-12). (살구나무:שׁקד shâqad ; 깨어있다. 지켜보다. 파수하다)

 

웨일즈 성경학교와 웨일즈

리즈 하월즈가 이 성경학교를 웨일즈에 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을 지시하셨듯이 리즈 하월즈에게도 스완지(Swansea)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상 다른 곳에서는 유례가 없는 부흥을 계속해서 웨일즈에 보내셨습니다. 그 부흥은 단지 웨일즈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1904년의 부흥은 10개국이 넘는 나라에 강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리즈 하월즈도 1904년 부흥의 영향을 직접 받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웨일즈 성경학교는 사람들이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 웨일즈의 영적 기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 성경학교의 중보기도는 2차 세계 대전의 전세를 바꾼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이스라엘이 2천 년의 방황을 끝내고 나라로 독립할 때 유엔(UN)의 투표를 번복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기도와 중보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열방을 향한 웨일즈 성경학교의 중보자들의 기도와 중보는 지금도 그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웨일즈 성경학교와 이스라엘, 그리고 열방

이스라엘과 웨일즈 성경학교: 사람은 에덴 동산으로부터 지금까지 실수하고 실패하고 하나님을 거역해 왔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결코 바꾸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선택하셔서 열방을 섬기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보여 주도록 부르셨습니다. 예수님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자신을 드려 섬기셨고 또한 영원한 왕으로 예루살렘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여부스 족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택한 그 땅을 역사 속에서 계속해 짓밟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원수는 지난 2천년간 성공적으로 이스라엘 땅을 짓밟아 없애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그 땅을 회복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과 그 분의 영원한 목적에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리즈 하월즈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속에서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회복되기 전에도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렌즈가 아닌 성경적인 렌즈로 이스라엘의 위치와 목적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리즈 하월즈와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 왔던 것처럼 웨일즈 성경학교 자리에서이스라엘을 위한 기도가 계속되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25-27)

 

열방과 웨일즈 성경학교: 리즈 하월즈와 그의 아내는 1915년부터 1920년까지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선교사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신부들을 보기 원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로 헌신하여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1920년 아프리카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성경학교를 세워서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더 많이 내어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순종했고 웨일즈의 젊은이 뿐 아니라 열방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를 거쳐서 열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모든 직업을 포기하고 재정적인 수입을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주변 사정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땅에 속한 것으로 노력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하늘의 영향력을 끼칠 수는 없습니다. 리즈 하월즈와 그의 스텝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강의실에서도 가르쳤지만 매일의 삶을 통해서 가르쳤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 세상을 이기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팡이 주인인 아론이 특별했습니다. 물론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함을 통해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리즈 하월즈도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겸손, 순결, 그리고 연합을 이루고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비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리즈 하월즈의 영적 유업을 회복하고 웨일즈 성경학교의 땅을 다시 취하며 중보와 선교의 사역을 다시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겸손하고 불순한 동기가 없으며 자신의 사역이나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과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

7년 풍년과 7년 흉년: 요셉 때에 있었던 7년 풍년이 오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벌써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풍년이 끝나면 7년간의 엄청난 흉년이 올 것입니다. 이 때를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와 믿음을 공급할 사람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이전에는 기독교 원리를 따르던 정부가 하나님의 진리와 믿음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공공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제제하는 장치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복음을 나누다가 직업을 잃거나 법정에 고소당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기근: 정보의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는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선한 생수를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이러한 기갈은 음식이나 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기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아모스 8:11-13)